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한국 사회의 권력, 인맥, 부패를 조명한 대표적인 범죄 영화입니다. 단순한 갱스터 무비를 넘어 정치권력과 조직범죄 간의 유착, 그리고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깊이 있게 다뤘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의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를 섬세하게 재현하며, 오늘날 현실 정치와도 맞닿은 구조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배경, 인물, 감독 연출을 통해 어떻게 범죄와의 전쟁이 현실 정치와 평행선을 이루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1. 감독의 연출
윤종빈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로 데뷔하며 리얼리즘 연출을 인정받았고,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그 리얼리즘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갱스터 스토리가 아닌, 사회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생존을 선택하는지를 밀도 있게 보여줍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국가와 언론, 검찰, 조직이 얽히고설킨 시대적 맥락을 사실감 있게 재현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최익현(최민식)은 부산 세관 공무원으로, 밀수와 뒷돈을 받는 데 능하지만 정치적 감각 또한 탁월한 인물입니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조직 폭력배 최형배(하정우)와의 인맥을 발판으로, 조직과 공권력 사이를 줄타기하며 출세해 나갑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범죄자의 성장기가 아닌, 권력 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의 이야기입니다.
윤 감독은 “정의로운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맞춘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영화 전반에 담습니다.
이는 단순히 당시의 현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2024년 지금도 반복되는 사회 구조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치로 읽히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2. 줄거리
범죄와의 전쟁의 배경은 1982년부터 1990년 초까지입니다.
이 시기 한국은 전두환 군사정권 말기부터 노태우 문민정부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습니다.
부산이라는 지역은 당시 실제로 조직 폭력과 정치권이 얽힌 사건들이 많았고, 이 영화는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극화됐습니다.
최익현은 작은 권력의 말단에 있지만, 인간관계와 처세술로 점차 승진해 가며 조직폭력배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검찰, 경찰, 정치인들이 서로를 보호하고 이용하는 구조는 실제 현실 정치와 매우 유사하며, ‘정의’보다는 ‘줄’과 ‘배경’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영화 중반, 전두환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캠페인이 시작되자, 그동안 유착되어 있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배신하고, 검찰은 일제히 숙청 작업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최익현은 갑작스레 권력에서 배제되고, 생존을 위해 뒷거래와 협상, 배신을 감행하지만 결국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카드를 쓰게 됩니다.
이러한 전개는 정치와 권력의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불법과 부패는 문제로 인식되지 않다가, 정권이 바뀌거나 흐름이 달라지면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 아래 정리됩니다.
이는 실제 정치에서도 반복되는 ‘표적 수사’와 ‘정치적 정리’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으며, 영화는 그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3. 오늘날의 권력 현실
2024년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권력의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검찰, 경찰, 행정부, 그리고 정치 세력 간의 줄 서기와 눈치 보기, 보복 수사와 인사 파동은 범죄와의 전쟁 속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등장하는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구조’, ‘친인척 라인으로 만들어지는 인사 시스템’, ‘법과 정의가 아닌 관계 중심의 사회’는
현실의 고위 관료 사회나 정치권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주인공 최익현이 가진 생존 방식—겸손, 뇌물, 관계 유지, 위기 회피—는 2024년을 살아가는 직장인과 공무원들에게도 어딘가 익숙한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복고극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여겨집니다.
게다가 SNS와 유튜브 클립으로 재조명된 이 영화의 명대사들은 오늘날 사회 풍자 콘텐츠로도 소비되며,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우리가 남이가" 등의 대사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한국 정치문화의 실체를 함축하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4. 결론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한 누아르 장르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 생존과 인간 심리의 축적을 보여주는 리얼리즘 영화입니다.
윤종빈 감독은 철저한 고증과 디테일을 통해 80~90년대의 시대성을 구현했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능과 정치권력의 속성을 날카롭게 드러냈습니다.
2024년 현재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그 메시지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에도 평행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